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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랫드 2023. 8. 15. 16:10

지난 여름부터 계속 같은 질문이 머리 속을 맴돌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원대하게 내세운 계획들을 모두 실패하게한 머저리였다. 고등학생때는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인생의 성공한 전부라고 느꼈다. 그래서 잠을 줄이기도 하고, 스마트폰을 보면서 시간을 허비할 때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공부를 했다. 난 모두가 우러러보는 학교에 입학하여 내 말을 모두가 경청해줬으면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고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도 달라지리라 생각했다. 나는 학창시절 주장이 강한 학생이었지만 숫기가 없고 조용했다. 그때문에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지녔거나, 에너지가 넘치고 거리낄 것 없어보이는 학생들을 부러워했다. 그들은 모두에게 자신의 삶을 인정받고 있었다. 자기 앞의 생을 막아서는 것이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모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나는 한편으로는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진정한 삶의 가치인지 은근히 속으로 저울질 하고 있었다. 입시에 대한 압박과 원초적 본능을 억누르려는 자세가 내게 크나큰 스트레스였다. 삶이 힘들다고 처음 느꼈을 때, 행복이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행복은 돈주고 살 수 없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소비가 가져다주는 행복은 가짜인가? 간단한 욕구충족 가령 배고플때 맛있는 빵을 사먹는 다든지, 목마를때 마실 수 있는 음료를 살수있는 돈을 발견했을 때, 멋지고 좋아보이는 곳에 가서 가족들과 풍족하게 저녁식사를 마쳤을 때 나는 행복감을 느꼈다. 그시절 나는 수험공부를 하며 무심코 집어든 한국문학 전집에 빠져있었다. 책속에 나와 삶의 중요한 가치를 깨닫게 해주거나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가난하거나 불행했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이해가 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기에 주어진 삶에 정면으로 맞선다는 느낌을 받았고 실패 또한 정면으로 맞섰기에 일어난 결과였다. 물론 어떤 실패도 두려워 실천하지도 않은 사람의 이야기 또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의 역동적인 불행서사에 깊이 빠져들게한 것은 다름아닌 내 안에 내재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었는지 모른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들의 삶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실패또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었기 떄문이다. 그들의 삶은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을 뿐이지 그자체로도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여기에서 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었는지 또한 의문이었다. 멋지고 좋아보이는 것만이 아름다움이라 생각했었는데,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지거나 다른사람들이 숨기고 싶어하는 추악한 모습을 떳떳이 드러내어 타인이 정한 기준에 저항하는 모습이나, 처절하게 실패하길 반복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태도는 가히 내게 숭고함 그 이상의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그들이 지닌 것들은 진정 인간의 참된 모습이 아닐까? 나는 그렇듯 투명하고 원초적인 것들에 경외심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죄다 위에 있지 않았다. 아래에 있었다. 우리가 꿈꾸는, 바라는 이상적인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기피하고 숨기려고 하는 욕망과 본능들이었다. 다루기 힘들고, 다루지 못하면 쉽게 무너지며, 그래서 누구나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런 비이상적인 특성들 말이다. 

가령 나는 성적인 욕망이 있는 편이었다. 대단하다고 말은 못하겠지만 남몰래 비밀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었다. 나는 그것이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생식기능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불쾌하고 타락한 것들이라고 배웠기에 숨기기에 급급했다. 나는 내 욕망을 다룰 수 없었기에 욕망이 일어날 떄마다 주머니에 넣고 묶어버리기 급급했고 결국 그것이 터져 더 큰 오해와 갈망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시절 나는 내 욕망을 다루는 방법을 몰랐다. 다루기 위해선 이해가 필요했다. 내가 왜 이런 욕망을 갖는지. 무작정 나자신을 추악한 타락자 라고 낙인찍으면 안되는 거였다. 그런식의 구속은 왜곡되어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나의 순수한 욕망이 겉잡을 수 없는 불길로 번져 세상 전체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오류를 낳게될 수도 있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