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 100ml는 100g이다. 그런데 보드카 100ml는 100g이 아니다. 91.4g이다.
호텔 바에서 배치(batch) 칵테일을 만들던 시절, 프렙 시트 맨 위에 붙어 있던 환산표의 첫 줄이 이거였다. 에탄올은 물보다 가볍다(비중 약 0.789). 그래서 40% 보드카의 비중은 0.914가 되고, 96% 스피리터스급 주정은 100ml에 78.9g까지 내려간다. 반대로 설탕이 녹은 시럽은 물보다 무거워서, 우리 바 기준의 심플시럽은 100ml가 125g이었다.
이 숫자들이 왜 중요한가. 부피는 흔들리지만 무게는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지거의 한계, 저울의 정확성
지거(jigger)로 30ml를 계량할 때 실제 오차는 생각보다 크다. 따르는 각도, 표면장력, 마지막 한 방울을 털어내는 습관, 바쁜 금요일 밤의 손 — 한 잔에서 ±2ml는 우습게 난다. 한 잔이면 괜찮다. 문제는 스케일이 커질 때다.
1잔 레시피를 100잔 행사용으로 늘린다고 해보자. 잔당 2ml의 오차는 200ml가 된다. 진 200ml — 칵테일 서너 잔 분량의 재료가 통째로 사라지거나 넘치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의 정상급 바들은 배치를 부피가 아니라 무게로 만든다. 이 방식을 대중화한 책이 데이브 아놀드(Dave Arnold)의 『Liquid Intelligence』(2014) — 칵테일을 저울과 온도계로 다루는 현대 바 사이언스의 교과서다.
실무 환산표 — 바 프렙 시트에서 그대로
내가 실무에서 쓰던 기준값을 공개한다. 집에서 배치 칵테일이나 시럽을 만들 때 그대로 쓰면 된다.
| 재료 | 100ml의 무게 | 비중 | 메모 |
|---|---|---|---|
| 물 | 100g | 1.000 | 기준 |
| 보드카/진/위스키 40% | 91.4g | 0.914 | 40% 스피릿 공통 근사치 |
| 주정 96% | 78.9g | 0.789 | 에탄올 비중에 수렴 |
| 심플시럽(리치, 약 2:1) | 125g | 1.25 | 바마다 배합 다름 — 자기 시럽의 비중을 한 번 재두면 평생 씀 |
| 소금물 20%(세일린) | 110g | 1.10 | 짠맛 1~2방울용 솔루션 |
| 얼음 10g | 녹으면 10ml | — | 희석 계산의 기초 |
여기에 도구 환산 두 가지를 더하면 프렙 시트가 완성된다.
- 바스푼(BSP) = 2.5ml. 레시피의 '1 bsp'는 감이 아니라 2.5ml다.
- 대시(dash)는 병마다 다르다. 우리 바에서 쓰던 대셔 보틀은 10ml를 털어내는 데 약 55회 — 1대시가 0.2ml에 못 미쳤다. 시중 비터스 병은 1대시에 0.5~0.9ml짜리도 흔하다. 그래서 프로들은 자기 병의 대시를 한 번 세어 ml로 환산해둔다. "앙고스투라 2dash"라는 레시피가 바마다 다른 맛이 나는 이유의 8할이 여기 있다.
- 탄산의 세기도 숫자다. 카보네이션은 리터당 CO2 그램수로 관리하는데, 실무 근사치로 10psi당 약 1g/L로 계산했다.
무게 계량이 바꾸는 세 가지
- 재현성 — 오늘의 마티니와 다음 주의 마티니가 같은 맛이 난다. 프리미엄의 정의는 화려함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음'이다.
- 속도 — 배치는 저울 위에 통을 올리고 영점 잡고 붓기만 하면 된다. 지거로 40번 계량하는 것보다 빠르고 정확하다. 행사·케이터링·홈파티에서 진가가 나온다.
- 레시피의 언어화 — "적당히"가 사라진다. 누구에게든 전달 가능한 스펙이 되고, 그래야 메뉴가 자산이 된다. 컨설팅에서 메뉴 개발의 마지막 단계가 항상 '스펙 시트 작성'인 이유다.

해보기: 김렛 10잔 배치
진 60ml + 라임 코디얼 15ml 김렛을 10잔 만든다면 —
부피식: 진 600ml, 코디얼 150ml를 지거로 계량 (오차 누적)
무게식: 빈 병을 저울에 올리고 → 진 548g(600×0.914) → 코디얼은 자기 코디얼 비중을 곱해서 → 끝.
라벨에 날짜와 배합을 적어 냉장고에. 마실 때는 잔당 75ml만 따라 셰이킹하면 된다.
오늘 해볼 것 1가지
주방 저울에 컵을 올리고 자주 마시는 술(또는 시럽·꿀·우유) 100ml를 부어 무게를 재보자. 그 숫자가 당신의 첫 번째 비중 데이터다. 적어두면, 다음에 어떤 레시피든 무게로 변환할 수 있다.
음료는 마시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 프리미엄 다이닝 음료 페어링 설계 및 논알코올 시그니처 음료 설계는 프로필 링크로
참고문헌: 호텔 바 실무 프렙 시트 「Bar Science」(재료 비중·환산 기준표); Dave Arnold, 『Liquid Intelligence: The Art and Science of the Perfect Cocktail』 (W. W. Norton, 2014); 에탄올 비중 0.789(20℃) — CRC Handbook 표준값.
'음료(티,차,떼,위스키,스피릿)'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논알코올 랩 #1] 소버 큐리어스 리포트 2026 —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 술 시장을 바꾸고 있다 (0) | 2026.07.17 |
|---|---|
| [바 사이언스 #1] 바텐더의 저울 — 보드카 100ml는 91.4g, 무게로 만드는 칵테일 (0) | 2026.07.08 |
| [위스키 아카이브 #1] 위스키는 원래 화장품이었다 — 알코올의 어원부터 '생명의 물'까지 3,000년 (1) | 2026.07.08 |
| [위스키 아카이브 #1] 위스키는 원래 화장품이었다 — 알코올의 어원부터 '생명의 물'까지 3,000년 (0) | 2026.07.08 |
| [바 문화 실전 #1] 세계적인 바가 신입에게 42주 중 첫 주에 가르치는 것 — 기술이 아니라 환대다 (0) | 2026.07.08 |